지방 고용변호사의 토요일(펌) > 자유/팁/커뮤니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유/팁/커뮤니티

자유
지방 고용변호사의 토요일(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존엄 댓글 0건 작성일 18-12-23 20:05

본문

지방에서 고용변호사 노릇하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사무실은 대표가 수완이 좋아서 꾸준히 수임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지방에서는 드문 규모로 공산펌을 유지를 하고 있구요


덕분에 저도 꾸준히 40건 정도 합니다. 다른 고용변들은 몇건 정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데 있다가 온 선배는 전 사무소에서 60건 정도 했는데 이러다가 죽겠다싶어서 이직했다고 합니다


출근해서 커피마시고 노가리까며 놀다가 오후에 바짝 일하고 칼퇴하는 웰빙변호사들 자랑담을 인터넷에서 많이 봤는데...


저는 요즘 상황이 녹록치가 않습니다. 야근을 너무 자주하네요. 오늘도 출근했습니다. 그래도 사무실이 장사가 잘돼서 월급 안밀리고 받고 있으니 감지덕지를 해야 하는건지... 근데 월급이 많지는 않습니다. 지방 법률사무소 고용변은 정말 너무나 쉽게 누구로라도 대체할 수있는...잡일꾼에 불과하기 때문에죠ㅠ


낮에는 의뢰인들 전화받거나 재판다녀오는데 시간을 다 보냅니다. 변호사는 결국 서면쓰는게 주 업무인데, 서면 쓸 시간 내기가 쉽지가 않아서 결국 야근을 하게 되는 악순환...


사실 제가 좀 무능한거 같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야근한다고 해서 성실하다, 책임감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지가 일을 빨리 못해서 빌빌대는 것일 뿐이죠..ㅠ


진상의뢰인은 정말 엄청나게 많습니다. 브로커를 끼고 마구잡이 수임을 하는 사무실이라면 아마 더할겁니다. 우리 사무실은 그러질 않는데도 전혀 예상치 못한 진상들이 튀어나옵니다. 


대면하거나 전화통화에서 억지를 부리거나 쌍욕하고 화내면 차라리 그게 양반입니다. 내 앞에서는 한없이 젠틀하고 합리적인척 해놓고 힘없는 여직원에게 갑질을 하거나 대표한테 전화해서 'OOO변호사가 내 사건을 엉망진창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클레임거는 부류가 더... 괴롭습니다


솔직히 제 생각에, 이길 사건은 이기고 질 사건은 지는거 같습니다. 드라마틱한 한판 뒤집기는 한번도 못봤습니다. 다만 판결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이겼는데 '대체 왜 이긴거지????'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상대방 대리인도 얼빵해서 항소를 안하면 개꿀.. 생각보다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다.


이 일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고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타이 매고 사무실에서 타자나 치는 화이트칼라의 폼나는 삶을 상상했는데, 양복만 입었지 순 노가다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같이 별볼일없는 평범한 고용변은 이혼사건 많이 합니다. 형사건도 생각보다는 많이 하는데 대개 음주운전, 상해, 강제추행, 잡범스러운 사기, 횡령, 절도 정도입니다. 대개는 자백사건이라 고도의 법리다툼, 검사와의 치열한 공방 그런거 없습니다. 양형기준표 보고 감경인자 뽑아서 읍소하는 의견서 쓰는게 일입니다. 피해자한테 합의해달라고 굽신대거나...


사람들이 이혼 엄청 많이한다는걸 변호사 되고 알았습니다. 이혼 진짜 많이 하더군요. 이혼사건은 99%가 법리다투고 자시고 할게 없기 때문에 부담은 적은데 대신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이혼소송하고 있는 사람들을 케어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제 경험상 고학력이거나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진상이 많았습니다...


변호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의외의 인물이 바로 판사입니다. 판사 스트레스는 정말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질적으로 더럽습니다. 생각보다 이상한 판사는 정말 많습니다. 물론 판사들은 반대로 '요즘 무능하고 이상한 변호사가 너무 많다'고 말하지만요... 재판 진행을 개판으로 하거나 판결문을 괴상하게 쓰는건 오히려 양해(?)가 되는데, 변론기일에 대리인으로 나온 변호사를 모욕주거나 혼내는 판사들은 정말이지... 하...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는 서울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방법원, 지원은 정말 가관인 판사들이 많습니다. 판사가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짓거리를 해도 변호사는 그저 눈치보며 굽신거릴 따름입니다. 가끔 전관출신 할아버지 변호사나 멋모르는 젊은 변호사가 맞짱을 뜨기도 하는데, 그래서 얻을 것이 하나도 없거든요..


고용변호사 입장에서 큰 스트레스는 패소판결 받은 이후의 의뢰인 케어(?)입니다... 이기는 사건만 수임하는건 불가능합니다. 브로커끼고 마구잡이 수임을 하는 사무실은 더더욱 그럴겁니다. 패소판결 소식을 알리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변호사가 엉망으로 해서 졌다고 난리를 치는 의뢰인을 대하는 것도 너무나 괴롭습니다. 처음 계약할때부터 패소가능성이 높고 이러이러한 점이 불리하고 저러저러한 증거가 부족하고 충분히 설명을 하고 녹음, 문자, 이메일 다 남겨놔도 나중에 후폭풍은 면할 수 없습니다. 계약할때는 '져도 상관없으니 변호사님이 알아서 해주십시오' '질때 지더라도 억울해서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판결 선고되면 말 바꿉니다. 백프로임다..


일 시작하기 전에는 '나는 저 무능해보이고 지친 얼굴로 맨날 술이나 마시는 선배들처럼 되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했었습니다. 근데 결국 저도 그렇게 됐습니다. 따로 시간 내서 최신판례 스터디도 하고 책 사서 공부도 하고, 법리 연구도 해보고... 개똥같은 소립니다.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가끔 견딜 수 없을때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술이나 퍼먹으러 갑니다. 물론 이건 저같은 무능한 변호사 이야기고, 힘든 업무 속에서도 시간 내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무시무시한 변호사님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결국 잘나가시더라고요.


주말에 말도 안되는 서면을 억지로 쓰다가 현자타임이 와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하.. 내일도 나와야할거 같네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06건 4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설문조사

평균적으로 하루중 가장 오래 사용하는 서비스는 ?


그누보드5
Copyright © zlgyo.com All rights reserved.